최근 로제의 <A.P.T.>라는 노래가 유행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 역시 이 노래를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른바 '챌린지'라는 참여 문화적 행위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로제의 노래가 인기를 얻으며 함께 재조명되는 곡이 있다. 바로 윤수일의 <아파트>이다. 1998년 발매된 이 노래의 첫 소절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라는 가사로 시작하며,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아파트에 대한 낭만을 각인시켰다. 이는 로제의 <A.P.T.>가 일종의 '게임' 같은 느낌을 주는 것과 달리, 윤수일의 <아파트>는 아파트를 삶의 이상적 공간으로 묘사한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이는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잘 반영된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아파트를 주요 배경으로 한 최근 작품인 <콘크리트 유토피아>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배우 이병헌, 박보영, 박서준의 출연으로 잘 알려진 작품으로, 지진으로 파괴된 도시 속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의 입주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드러나는 '우리 아파트'라는 표현은 이들 공동체의 경계를 보여준다. 오늘날 아파트는 집값이라는 공통 목표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결집하는 공간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영탁(이병헌)은 윤수일의 <아파트>를 들으며 시작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그가 평생 바쳐 얻은 아파트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금애(김선영)는 아파트 부녀회장으로서 이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힘쓴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단순히 아파트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자산과 명예를 지키기 위함임을 암시한다. '나의 아파트'라는 표현은 이제 단순한 주거지를 넘어 지켜야 할 재산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속 '나의 아파트'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우리 아파트 하나만 남은 상황'은 비극적 아포칼립스를 상징한다. 이 상황은 아파트를 자신의 자산으로 여기는 집단의 생존 본능과 맞닿아 있다. 금애는 전세, 월세, 자가 등 거주 형태에 따라 서열을 구분하고 대표자를 뽑는데, 그 대표가 된 영탁은 아파트의 규칙을 세워 공동체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 규칙은 모든 입주민에게 적용되며, 반항하는 이는 '아파트 외부자'로 간주된다. 명화(박보영)는 입주민이 아님에도 외부인을 도우며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중시하는데, 이는 남편 민성(박서준)과 갈등을 일으키지만 아파트 내부와 외부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이러한 명화의 관점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명화가 아파트 외부 생존자들에게 포섭되며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라는 말로 아파트의 본질적 의미를 일깨운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이 신체에 각인되고 스스로 집단 규율을 감시하는 방식을 논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도 영탁과 금애는 규율을 강화해 입주민들에게 각인시킨다. 민성은 규율을 지키며 구조의 일원으로 역할을 수행해 공동체를 유지한다. 그러나 명화의 규율 파괴는 집단의 불안정을 초래하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 균열이 드러난다. 금애(김선영)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규율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반항을 일으키고, 규율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울분은 체제에 대한 의문을 촉발한다. 특히, 영탁이 실제로 입주민이 아니라는 사실과 본래의 입주민을 살해하고 아파트 이데올로기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은 체제의 균열을 드러내며 영화의 새로운 국면을 연다. 하지만 새로운 국면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구조의 외부자들 즉, 아파트 외부의 이들의 침입으로 인해 아파트의 구조는 붕괴되고 규율을 유지하는 관리자의 집단은 그 타격을 받게 된다. 특히, 금애와 영탁의 몰락은 구조와 체제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아파트의 영원한 유토피아 역시 몰락하는 과정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상상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파트의 유토피아는 무엇인가?"라는 끝없는 질문 속에, 우리의 아파트 집착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로 생각은 나아간다. 규율과 권력이 함께 존재하는 아파트 생활을 보여주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실 평등과 평화라는 단어는 전무하다. 전세, 월세, 자가, 그리고 외부인이라는 등급으로 나뉘어지는 철저한 계습사회 속에서 평화는 차별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규율권력과 계급권력이 그대로 나타나는 모습에서 이들은 마치 자본주의적 유토피아가 아닌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과연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 권력은 무엇인가 고민을 해본다. '나의 아파트'를 가진다는 일련의 생각에서 부터, 그것이 재난 상황에서 어떠한 권력 관계를 발휘하게 되는가에 관한 아포칼립스적인 관점을 던지는 본 영화에서 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영화를 단순히 아포칼립스적 재난 영화로만 볼 수 없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아파트'라는 한국만의 집단 생활 속에서 규율권력이 탄생하고 그것이 지켜져 나가는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아파트'라는 규율 속에서만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좀처럼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큰 사회 속에서 우리는 '보통'이라는 만연한 규율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않는 자들을 '이단아' 혹은 '부적응자'로 부른다. 학교에서 공부를 안하는 이들을 불량아로 통칭하며 부르기도 하고, 취준생 혹은 취업을 포기한 자들을 쇄퇘한 이들로 엮어 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여전히 계층화된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과연 오늘날의 인간답게 살기라는 행위는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2023년 8월에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한에 의한 한국사회의 붕괴 체제 자체의 붕괴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나가는 요즘의 한국 또한 '체제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 신뢰는 무너졌으며, 국민은 정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에 신뢰를 가한다. 그리고 이는 사회의 극심한 갈등의 현재 상황과도 맞물려, 일종의 무정부 사태를 표방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오늘날 극대화되는 아파트 살이와 사회의 갈등 상황에서 인간답게 살기에 대한 제언을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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