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 이 글의 영화 후기를 보고 관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한 번 읽어볼 여지는 있을 것이다. 뻔한 스토리에 뻔한 이야기를 대상으로 어쩌면 새로운 시각을 도출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써 보는 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내용을 소위 개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 말에 비동의하지는 않는다. 과잉된 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 소개할 영화는 7월 30일 문화의 날에 개봉한 <좀비딸(2025)>이다.
뭐, 이 정도는 이야기해도 괜찮겠지만, 이 영화는 좀비가 된 딸을 숨기며 보호하는 이야기다. 이정환(배우 조정석)은 서울에서 퍼진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대피하기 위해 딸(이수아; 배우 최유리)과 함께 차를 타고 대피하려고 하지만, 차를 가지러 가는 사이에 딸이 다른 감염자에게 물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좀비가 된 딸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정환은 자신의 딸을 잘 키워 보려고 노력한다. 사실 부산행, 감기와 같은 서사에서 종종 등장하는 대피와 자식을 구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이는 부모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는 이해에서 시작된다. 다만, 대부분의 서사에서는 '엄마'라는 역할이 두드러진다.

<감기(2012)>의 서사를 보자. 자신의 딸을 치료하고자 했던 엄마는 딸을 위해 위법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담론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실 '여성'이라고 언급하기도 애매하다. 사회적으로 '엄마'라는, 자식을 가진 여성의 역할을 그려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커리어우먼이라 해도 그 역할은 무시되지 않는다. 이는 질병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과거 화제가 되었던 <킹더랜드(2023)>라는 JTBC 드라마의 경우, 자식을 지키기 위해 아내의 자리를 떠나는 것 또한 감수하는 엄마의 역할을 그려낸다. 이처럼 '엄마'라는 존재는 일종의 모성애라는 담론과 함께 자식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담론으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부성애의 담론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었을까? 곽한주(2020)는 IMF 이후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남성성, 특히 부성애에 대해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영역이라고 언급한다. 즉, 행복한 로맨스에서의 아빠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된다면 재난 영화에서 엄마의 역할 또한 비슷한 양상으로 그려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미 완전한 가족이 구성되지 못하는 지점에서 누군가는 자식을 지키기 위한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친근한 아버지'라는 인상은 다소 거리감을 준다. 곽한주가 비판한 부성애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다. 가족 해체 과정에서 자식과 어느 정도 서먹한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보여지는 희생과 고통을 언급한 것이다. 그렇다면 모성애와 부성애의 차이는 뚜렷해진다. 어머니의 경우, 사랑하는 아이와 헤어지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러나 부성애의 경우, 아버지의 희생으로 인해 자식이 아버지의 희생을 사랑으로 치환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시선에서 <좀비딸(2025)>을 보자. 영화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버지의 부성애'가 본 영화의 주된 주제다.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지키고자 한다. 예고편에서도 드러나듯, 자신의 딸을 잘 훈련시킨다는 점은 딸과 아빠의 연대감을 표현한다. 이 영화의 주된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이다. 기존 영화가 아버지가 딸을 양육하기 위해 '돈'을 번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이 영화는 '딸-아빠'의 라포가 주요 감정 포인트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딸과 아빠가 보아 2집 No.1(2002)의 춤을 추는 장면부터 이 연대감이 잘 드러난다. 기존의 서먹한 아빠의 모습이 아닌, 친근한 아버지의 역할을 한다. 식탁에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만으로 차려진 아침을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는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단순한 라포가 아닌 친구와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기존 영화에서 어머니가 맡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그렇기에 조정석은 자신의 딸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지키는 아버지로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 역할을 하는 사람은 조정석뿐이다. 딸을 포기하지 않고 교육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부모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시골에 내려가 이정환(조정석)의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밤순(이정은)은 시골에 사는 할머니로서 당대 사회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이미지를 지니면서도, '할머니'라는 규율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인다. 특히 아들이 시골에 내려가 딸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국가에 신고해야 한다'는 할머니의 의견은 가족보다 국가 지침을 우선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문화적 트렌드를 학습했음에도 몸에 배인 규율의 이행은 '손녀를 신고한다'는 의견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할머니의 역할은 손녀를 '돌본다(Take Care)'는 의미에서 중요하지만, 동시에 들킬 위험이 많은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이정환의 첫사랑인 연화(조여정)에게 들킴으로써 그대로 드러난다.

연화는 좀비를 반드시 살해하고 신고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정환과 좀비가 된 딸의 모습을 보고 변화한다. 이는 기존 우리 사회의 환상 속 '좀비'의 이미지와도 상충된다. 기존의 좀비가 '말을 듣지 않는 존재'라면, 이 영화의 주요 포인트는 '말을 듣는 좀비'다. 연화의 제안, 혹은 살해 유예에는 항상 '말을 듣는다면'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이정환은 연화의 살해 유예를 위해 이 조건에 맞는 딸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 '만약의 조건'은 인간의 최소 조건일 뿐,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는 푸코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푸코는 규율이 인간의 몸을 지배할 때 유순한 신체가 된다고 보았다. 즉, 사회의 규율을 인지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감시할 때 '도덕적 인간'이 되고, 유순한 신체가 된다는 뜻이다. 이 영화에서 딸은 유순한 신체가 아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본능만 남은 인간으로, 일정 부분 '생각하는 힘'은 남아 있지만 규율을 따르는 힘은 없다. 연화는 '생각'을 규율로 인정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인간'이라기보다, 규율을 잘 따르는 인간으로 본 것이다. 이수아(딸; 배우 최유리)가 영화에서 학교에 가는 이유 또한 이러한 의미를 담는다. 연화는 '인간이라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라는 이데올로기에 포섭되는 존재만이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갖춘다고 본 것이다. 이 차원에서 보면 연화에게 좀비는 본능만 남아 사회에 포섭되지 못하는 존재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연화와 이정환의 충돌은 이 과정에서 일어난다. 정환은 딸에게 자신만의 규율을 학습시키고 있었고, 이는 기존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와는 일정 부분 충돌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제1원칙 '아빠가 물라고 할 때에만 문다'는 원칙은 딸을 동물처럼 대상화함과 동시에, 권력자에 의해 욕구가 억제된다는 규율로 작동한다. 이는 '도덕적인 사람은 살해하지 않는다'와 같은 기존 규율과는 다르다. 이 규율은 오직 딸인 수아에게만 해당하는 명령이자 사회적 언어다. 수아는 정환의 교육에 의해 자신이 숙지한 기존 규율과 정환의 새로운 규율을 함께 기억한다. 이는 코믹적인 부분에서도 소화된다. 아빠는 따라야 할 존재로 인식되면서 자신의 본능과 충돌하는 부분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기존에 사회적 혼란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남는 법이 심각하게 그려졌다면, 이 영화는 코믹하게 그려내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사회에 어떻게 포섭될 수 있는가는 정환의 핵심 과제로 남는다. 수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동물원 동물처럼 훈련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규율을 수아에게 어떻게 학습시킬 것인가는 영화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부성애를 새롭게 그려내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규율'에 어떻게 포섭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즉, 사회적으로 부정당하는 딸의 존재를 어떻게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포섭시켜 '정상인'으로 살아가게 할 것인가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정환이 수아의 옷을 가지러 다시 서울에 가면서 드러나는 '감염자 보호'와 '감염자 살해'의 대립 과정에서 나타난다. 정환은 자신이 사랑하는 딸이 부정당하는 존재가 됨에 슬퍼하지만, 어떻게 포섭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주체다. 이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이 사회적으로 '함께 살아가기'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늘날 만연한 장애인과의 대립, 성별 갈등으로 나타나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싸움은 과연 그들을 해체하거나 처리해야만 해결되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긴다. 물론, 영화의 아쉬움 또한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 모든 과정을 일차원적인 개인 서사로만 그려냈다는 점이다. 웹툰에서는 사회적 문제라는 거대 서사와 개인의 서사를 오가며 그려낸 점이 두드러졌지만, 영화에서는 거대 서사를 국회 앞 대립 장면만으로 표현한다. 이는 정환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대립 현상으로만 보일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다만, 과연 비정상인을 비정상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 이정환(조정석)의 "우리 수아는 달라"라는 대사는 자신의 딸을 비정상인에 포섭시키기 싫은 내적 갈등과, 비정상임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비정상인도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앞서 비정상인과의 갈등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
<참고문헌>
곽한주. (2020). 포스트IMF 한국 남성멜로드라마의 장르분석. 씨네포럼,(37), 9-47. 10.19119/cf.2020.1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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