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과정을 마치며, 가장 많이 한 행위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논문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논문을 완성할 때까지 지켜봐 준 사람들에게 '나 졸업했어요'하고 자랑질 좀 하는 것과 함께, '당신이 지켜봐 준 저의 결과물입니다'하고 답례를 드리는 것과 같죠. 어쩌면, 리마인드 웨딩을 하면서 답례품을 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학위 논문에 감사의 글을 적기도 하죠. 마치 축사문과 함께 지켜봐 줌에 감사함을 담아서 말이죠. 저는 학위 논문을 쓸 때에 '감사의 글'을 따로 적지는 않았어요. 뭐랄까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감사의 글을 쓰기에는 모두 표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대신에 저는 논문을 줄 때 그 사람에게 편지를 써주기로 했어요. 논문 맨 앞 장에 빈 종이가 있는데, 그곳에 작은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죠. 논문을 마흔 권을 인쇄했으니, 거의 서른다섯 번은 편지를 써야겠네요.
9월 첫 주 주말, 이제 거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에게 논문을 나눠주었고, 오랜 친구들에게도 논문을 나눠주었어요. 그런데 거의 스무 번의 편지를 쓰면서 저는 계속 다른 사람이 되더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편지를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을 때에, 조금 생각에 잠겨요. '내가 그 사람을 언제 만났더라?', '내가 그 사람과 뭘 했지?', '그 사람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들과 함께, 해주고 싶은 말을 생각하죠. 그러다가 며칠 전에는 이제 석사 첫 학기를 다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어요. 먼저 나와 성격도 성향도 다른데,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친구와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죠. 그리고 사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는 그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더군요. 그냥 서로 곁에서 지켜주며, 안녕과 즐거움을 주기만 했더군요. 그런데 인생에서 그 두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요? 서로가 조금 더 잘 지내길 기도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겠죠. 그래서 그 마음을 썼어요. 석사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하는 네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나는 막막하고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데,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놨죠. 아마 오지랖일 수 있을 거예요. 전공도 다르고, 분과도 다른 둘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 뭐가 있겠어요. 근데, 그 과정에서 고민하고 성찰하는 과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제 마음이 그래도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만 한 것 같아요. '어휴 오지랖'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조금 더 나를 돌아보며 편지를 썼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편지에 쓰는 내용이 '오지랍'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조바심 내면서도 자랑과 응원, 감사의 말을 다 담으려니 힘들죠. 그래서인지 편지는 하염없이 내뱉는 곡소리 같기도 해요. 조금 더 나를 잘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내는 곡소리 말이죠. 그 사람이 어떤 독해를 할지는 모르지만, 잘 전달되기는 바라잖아요. 저는 잘 전달되기 위해서 최대한 담백하게, 성찰적으로 쓰려고 하는 것 같아요. '너는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쓰면 결국엔 훈계질처럼 느껴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너는 조금 더 나은 길을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놓죠. 아니면 나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도 옆에 있어줘서 고마웠다고 말해요. 그래도 나를 이야기하면서, 당신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잖아요? 저는 내가 오로지 당신만을 생각하며 쓰는 글 속에 '나도 당신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는 마음이 담겨있었으면 좋겠어요. 편지는 아무래도 그런 위치에 있는 글이니까요.
오늘 저는 그 몇일 전 썼던 편지와 논문을 가지고 친구에게 가기 위해 기차를 탔어요. 아무래도 백수가 가는 게 더 낫겠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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