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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제, 무명으로 살아가는 은둔자
주저리

새로운 도전 아래, 두려운 것은 항상 존재한다(1)

by 이름 없음의 방랑 2025.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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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에서도 언급했듯이, 항상 도전은 어려움을 동반한다. 나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새로운 공간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약 2주 이상이 걸리는 것 같다. 그것도 매일 그 공간에 가야 익숙해진다. 누군가는 나에게 편하게 있으라고 하지만, 나는 일정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가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제 석사 논문이 대체로 마무리될 즈음, 나는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한계는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취미, 그중에서도 운동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흘러갔다. 물론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의 주된 운동은 ‘러닝’이었다. 10킬로미터를 한 시간 내에 뛸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발이 아파도 달리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때때로 달리기의 익숙함에 지치기도 했다. 러닝이 지치는 이유 중 하나는 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 행위는 어쩌면 도전만 있고 종료는 없는 매 순간의 목표와 같았다. 다만, 나는 이 행위를 즐겼다. 공부라는 행위를 할 때에도 이 행위는 계속되었다. 끝이 없는 공부는 ‘찾아 나선다’는 재미를 주었고, 이 재미는 나에게 매 순간 도전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다만, ‘어디까지’라는 일종의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고통을 즐겼지만, 그 대상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었다. ‘나와의 싸움’을 즐긴다는 것은 매우 고독한 일임을 계속 느끼면서도, 나는 그것을 즐겼다.
 
다시 돌아와서, 사실 처음에는 석사 논문 본 심사가 끝나고 공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뭘 공부하지?’라는 생각은 머릿속을 어둡게 만들었다. 공부할 것은 많았지만 다시 0으로 돌아가야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당분간 공부를 하기가 싫어졌다. 사실 쉬고 싶어졌다. 무엇이 ‘잘 쉰다’의 기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을 해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으로만 대답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본 심사가 끝나고 그다음 주말, 나는 오랜만에 달렸다. 생각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한 넉 달 만이었나? 오랜만에 달리는 나는 매우 지쳐 있었다. 사실 ‘이제 왜 달리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다 뛰고 난 뒤의 경쾌함은 없었다. 단지 허무함만이 남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는 날려버릴 생각이 없어졌다는 허망함이 달리는 과정에서 나를 감쌌다. 지금까지는 공부라는 스트레스가 나를 지배하며 러닝으로 그 생각들을 날려 보내고, 나의 속박을 풀어 주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구속장치는 없어졌고,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면 되었다. 그래서 아무리 달리고, 다른 행위를 하려고 해도 허망함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물론 공부할 것은 많았지만, 이제 그것들은 내 주된 것이 아닌 부수적인 것으로 변했다. 나의 일상이었던 것이 부수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집중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되었다.
 
그날따라 모든 것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몸을 움직이고 싶었고, 넉 달, 다섯 달 만에 러닝을 결심했다. 그 운동은 우연히 나에게 내 인생에 대해 고뇌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연히 오랜만의 운동으로 7킬로미터 정도를 달리고, 산책 겸 동네를 돌아다니며 친구와 카톡을 나누고 있을 때, 친구가 러닝을 이야기하다가 ‘복싱’을 언급했다. 이 모든 ‘주저리’의 시발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는 내가 오랜만에 러닝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내가 달리는 모습이 마치 록키 같다고 했다. 아마도 러닝을 주제로 한 영화가 많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달리면서 달릴 때마다 항상 차던 모래주머니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그에게 달리는 모습과 배경음악만을 생각하면, 복싱 영화인 록키가 더 떠올랐나 보다. 그런데 친구가 ‘록키’를 이야기 하는 동안, 우연히 내가 격투 종목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격투기 운동을 추천했다. 친구는 복싱보다 유도나 레슬링을 추천했고, 그 대화는 그냥 지나가는 농담 정도로 넘겼다. 하지만 그 주말의 나는 그 사소한 대화 속에서 ‘레슬링’이라는 단어에 꽂혀버렸다. MMA, 레슬링, 유도, 심지어 축구나 농구, 럭비도 잘 보지 않는 나였지만, 왠지 모르게 격투 종목 하나를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계속 눈길을 주면서도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잘할 수 있을까?’, ‘소심한 내가 레슬링을?’,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등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 생각은 오히려 격투 종목과 나를 멀어지게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랬다. 다리 올리기가 무서워서 태권도를 안 갔고, 물이 무서워서 해변에서는 모래사장에서만 놀았다. 심지어 앞 구르기는 목이 눌릴까 봐 걱정이 앞섰다. 나는 항상 무서움에 사로잡혀, 과격한 것과는 멀리 지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달랐다. 조금 도전 아닌 도전을 해 보고 싶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새로운 도전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떨쳐버려 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마치 번지점프 대에서 끝없이 이어진 낭떠러지를 보며, 떨어지기 직전에 느끼는 울렁거림과 같은 무서움과 두려움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순간은 이제 많이 느껴봤다. 운동에서는 아니지만, 공부를 하면서, 학회에서 발표를 하면서 느낀 두려움과 비슷했다. 다만, 그것이 운동으로 표출되면서 과격함과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그 도전을 선물해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날, 한 체육관에 문자를 보내 보았다.
 
“하루 체험을 해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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