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항공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12월 29일에 일어난 참사를 조용히 애도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녁 휴대전화로 뉴스기사를 보던 와중에 보게 된 한 기사는 오늘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수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 그날에 벌어졌던 일들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일보가 잠깐사이 보도한 탑승객 명단은 곧 피해자들의 명단이었다. 그리고 그 리스트를 적랄하게 보게 된 순간, SNS에서 벌어질 2차 공유를 우려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사들은 공동으로 <재난보도준칙>을 2014년 9월 16일 재정 및 선포를 하였다. 특히 해당 준칙이 마련된 이유가 새월호 참사 당시 잘못된 취재 및 보도 관행으로 인한 2차 피해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과연 언론사는 현재 적절한 보도를 하고 있는가 궁금했다. 24시간 비행기의 동파 장면을 보도에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피해자의 실명과 나이 및 좌석번호를 그대로 노출하는 언론사는 10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가 묻고 싶어졌다. 어째서 피해자, 고인들의 인권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유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더불어 차량에 에어백이 있듯이, 활주로가 조금만 더 길었어도 괜찮았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활주로의 길이가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국토부의 이야기, 그리고 활주로의 길이 연장사업을 지지부진하게 미뤄왔던 국가의 무책임, 기체 결함이 예고되었을 수 있었음에도 안전불감증으로 넘어가며 수익만 쫓던 항공사의 책임은 2024년 12월 29일 아침을 무자비하게 만들어놓았다. 2024년 최악의 비행기 사고로 남게 되었고, 수많은 유가족들이 또다시 울부짖으며 새해를 맞이하게 만들었다. 국가는 일전의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처럼 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수많은 애도의 물결을 통해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언제나 그랬듯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관부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책임들을 다른 누군가에 개 떠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종사의 최후의 선택이었다던 언론과 조종사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언론의 기사들로 그 모든 책임을 조종사의 책임으로 떠넘기지 않아으면 좋겠다.
모든 이들이 12월 29일의 무안 제주항공 참사 피해자들의 명복을 함께 빌어주었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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