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우리는 오래 살아온 이들의 지혜를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든 이들의 조언을 ‘꼰대 같은 소리’라며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과 지혜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그들의 말이 정확하고 가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그들에게 기대어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지나치면 그들의 마음을 오해하거나 간과하게 된다. 그들 역시 무섭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살아왔음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오늘 나는 내 짧은 오해의 서사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무서움’이라는 감정과 자신의 쓸모에 대한 의구심에 관한 것이다. 최근 나는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할머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날이 늘어났다. 할머니는 종종 “왜 이 늙은이를 좋아하니? 젊은 사람들하고 어울려야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살 날 얼마 안 남은 노인네하고 노는 게 뭐 어때서요? 자주 봐야 좋죠. 나중에 바빠지면 못 볼 수도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누군가는 이 대화를 듣고 내가 무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특히 ‘노인네’라는 표현과 ‘살 날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 문제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런 표현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그들에게 있는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친구와 가족, 동료들을 떠나보내며 혼자가 되는 세상을 두려워하신다. 삶의 끝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자식들조차 늙어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게 될 것을 걱정하신다. 그래서 할머니는 종종 “늙은이는 빨리 죽어야 한다”고 말하신다. 이 말 때문에 우리는 자주 말다툼을 했지만, 곧 사과하고 화해하곤 했다.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쓸모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바뀌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모든 것이 그녀의 솔직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두려움이 싫었다. 그녀가 이런 생각 속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스스로 고립되지 않도록, 그리고 변화에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할머니는 20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새 집에서 할머니는 또 다른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할머니는 새 물건을 집에 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죽으면 이 물건들을 누가 치우겠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자신이 죽은 후 남겨질 물건들이 결국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으시고, 길거리에서 잠시 눈길만 주고 지나칠 뿐이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안쓰럽고 두려웠다. 생의 마감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이라 이해했지만, 동시에 그녀가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의 집에 세 가지 변화를 실천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새롭게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공간에 작은 활기를 더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얼마 전, 나는 할머니의 집에 작은 책상을 들여놓았다. 이사를 하면서 기존의 화장대를 모두 버린 할머니는 거실 구석에서 작은 거울을 놓고 쪼그려 앉아 화장을 하곤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80년 넘게 전통적인 ‘여성성’에 얽매여 살아온 그녀에게 화장을 하는 일은 단순한 꾸밈을 넘어 자신을 가꾸고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행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사와 함께 화장대를 버린 것은 단순히 가구 하나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그녀 삶의 일부를 버려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이제는 자신을 꾸미는 일이 쓸모없다고 여긴 듯 보였다.
작은 책상을 들여놓으면서 나는 그 위에 방바닥에 놓여 있던 텔레비전, 화장품, 화장 거울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제 의자에 앉아 화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 화장을 하며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녀의 여성성이 다시 발현되는 듯했다. 이 작은 변화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방에서 할 일이 없다고 발길을 끊었던 그녀가 이제 방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창고처럼 쓰이던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공간은 조금씩 그녀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녀의 삶에 찾아온 첫 번째 변화였다.
두번째로, 나는 할머니에게 꽃을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흔히들 어르신들은 생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꽃이 시들고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의 끝을 떠올리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꽃이 지더라도 새로운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 남대문 시장에 들러 상인에게 가장 오래가는 꽃을 추천받았다. 그리고 서양란 한 주를 사서 세종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꽃을 보자마자 적당한 화분을 찾아 나섰고, 작은 컵에 서양란을 꽂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하루 종일 그 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셨다. 꽃이 피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꽃이 피었다고 알려주셨고, 서양란은 세 달이 지나도록 시들지 않았다. 처음에 그녀는 꽃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몰라 나에게 전화로 물어보곤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나보다 더 잘 키울 거예요. 물만 마르지 않게 주시면 돼요.”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꽃을 죽이지 않으려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주었고, 잎이 시들면 안타까워하면서도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기뻐하셨다. 서양란은 그녀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추워지는 사이 꽃을 보호하기 위해 보일러를 켜야 했고, 그녀는 꽃을 돌보는 일을 핑계로 집 안을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일상에는 돌봄의 기쁨과 작은 활기가 더해졌다.
몇 년 전, 할머니의 배우자이자 나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함께했던 세월이 나보다 훨씬 길었던 그녀에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할머니는 거의 모든 활동을 멈추셨고, 경로당 같은 곳은 꿈도 꾸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쉴 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시장에 같이 가자고 하고, 열무와 알타리무를 사와 함께 김치를 담갔다. 한 주는 열무김치, 다음 주는 무김치를 담갔다. 처음엔 힘들다고 하시던 할머니는 어느새 “이번엔 무슨 김치를 담을까?”라고 물으셨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종종 반찬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평생 주부로 살아오신 그녀에게 익숙하고 적합한 일이었다. 반찬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은 그녀를 바쁘게 만들었다. 이것은 내가 그녀의 집안 풍경을 바꾼 세번째 실천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동네 사람들과도 가까워졌다. 장을 보러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다른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아파트 이웃들과도 친해졌다. 이웃들과 함께 산책을 나가고, 때로는 저녁을 같이 먹으며 ‘밥 모임’ 같은 활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걷는 일과가 생겼고, 그녀의 삶은 점점 활기를 찾아갔다. 이 모든 변화는 단순히 집 안에 새로운 것을 들여놓는 것을 넘어선 일이었다. 집은 이제 단순히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생산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그녀는 집 안에서 필요한 존재로 느껴졌고, 나는 그녀와 함께하며 할머니의 삶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단순한 쓸모를 넘어, 서로를 위한 필요라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녀는 이제 내가 내려올 때 어떤 반찬을 해줄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반찬을 만들며 행복한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투안(Tuan, 1977/2020)은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닌 의미화된 공간으로 정의한다. 그는 공간의 의미는 유동적이며, 그 유동성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집을 이미 죽어버린 공간으로 여겼다. 마치 자신이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오래된 물건만 남기고 새로운 것을 들이지 않는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공간에 책상을 놓았고, 꽃을 놓았고, 일거리를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할머니의 공간을 투안이 말한 ‘유동적 공간의 의미’가 실현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작은 변화들은 그녀의 삶에 활기를 가져왔다. 그녀는 그 공간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고, 밖으로 나가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시장에 가고, 병원에 가고, 때로는 접종을 위해 혼자 병원에 가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집 밖의 공간은 그녀에게 어색한 곳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녀는 점차 자신의 공간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공간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들이는 일은 단순히 물건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의미를 재구성하며, 삶의 반경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가끔 우리는 노인을 죽어가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노인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그들 역시 우리가 귀찮아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사람들은 종종 어르신들을 ‘살아있는 박물관’처럼 여기며, 그들의 쓰임새를 단지 기록으로만 남기려 한다. 하지만 노인은 기록에 남겨지는 존재도, 세상에서 불필요한 존재도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만,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한 소수자일 뿐이다. 나는 할머니와의 시간을 통해, 어르신들이 스스로를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며 새로운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것이 단순한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내면화된 소외감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느끼고, 물건을 들이는 일조차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 염려한다.
요즘 나는 할머니와의 관계를 단순히 손자와 할머니라는 역할로만 정의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당신’과 ‘나’라는 존재로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을 매 순간 느낀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에게 요청할 일이 있을 때, 그녀가 귀찮아하면 주저 없이 다음으로 미룬다. 귀찮아할 수 있는 마음조차 그녀와 내가 닮아 있는 증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자주 말한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가족 안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중요한 존재임을 강조하는 행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할머니께 반찬을 부탁한다. 오늘도 할머니의 반찬을 기다리며, 나는 그녀가 여전히 삶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집은 이제 기다림의 공간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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