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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제, 무명으로 살아가는 은둔자
시사 비평

"이제 스타벅스를 이용하자"는 말.

by 이름 없음의 방랑 2026.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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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적당히 좀 하라

 
   앞서 인용한 문구는 한 서울시장 후보의 발언이다. 최근 국민의힘 후보들은 일제히 “이제 스타벅스를 이용하자”고 말한다. 그 이유는 스타벅스를 향한 비난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는 것이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이재명 정권의 스타벅스 죽이기, 마녀사냥이 선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하다”며, 결국 이는 민주당의 기업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탱크데이”라고 불리는 이 스타벅스 마케팅 사건은 단순히 한 기업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었다. 과거 의류 리테일 기업인 무신사는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를 연상시키는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로 마케팅을 시행했고, 이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결국 많은 기업이 5·18을 추모하거나 기억하자고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상처를 소비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스타벅스”였을까. 그 이유를 단 한 가지로 귀결할 수는 없지만, 일정 부분 유추는 가능하다. 스타벅스가 대기업과 강한 유착 관계를 맺고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벅스 역시 신세계 계열사라는 점에서 대기업에 해당한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스타벅스와 권력·자본 간의 유착 관계가 형성된다는 비판 또한 제기된다.
 
   아울러 신세계그룹은 2009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을 개점하며 한국 교통 인프라의 중심부에 진입했다. 이후 2016년 동대구역 개발 사업에 민간 사업자로 참여하고, 대전 신세계 Art & Science를 개관하는 등 민관 협력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최근에는 2026년 2월 광주 광천터미널 민자 사업까지 추진하면서, 대부분의 광역시에서 민자 사업을 추진한 기업이 되었다. 스타벅스 논란은 이러한 신세계의 성장 궤적과 맞닿아 있다. 정부의 혜택과 수주를 통해 인프라 확장을 도모해 온 대기업이 국가 단위의 집단 기억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긴 것이다. 아울러 이번 논란은 개헌이라는 정치적 이슈와도 맞물려 있다. 2026년 5월 7일 국회는 5·18 정신을 포함한 개헌안을 상정·의결해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를 실시하려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불참으로 개헌안은 부결됐고, 개헌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스타벅스 논란은 기업이 5·18 민주화운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 되었다.

 
 다시 거대 보수 정당이 언급하는 “마녀사냥”이라는 키워드로 돌아가 보자. 이들은 스타벅스는 국가를 기억하는 애국 기업이라고 언급한다. 심지어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 “스타벅스를 가라 마라 아무도 명령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도 스타벅스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강제로 내리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의 위치에서 특정 기업의 발언이나 행사를 연상시키는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기업의 행위를 비판했을 뿐, 스타벅스를 가지 말라는 행정 명령을 내린 적은 없다. 특정 후보 캠프에서 만든 스타벅스 이용 자제 지침 역시 사회적 타당성을 얻기 어렵다. 집단적 기억으로 형성된 트라우마를 바탕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양심적 선택이 왜 ‘린치 현상’으로 규정되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수정 경기 수원정 당협위원장이 말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이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행위를 두고, 그것이 국가에 의해 조종된 결과라고 단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원리와도 충돌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는 오히려 비억압적 국가 이데올로기 속에서 기업이 어떤 가치에 편승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내포한다. 실제로 집단적 린치는 국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이 먼저 비판과 문제 제기를 시작했고, 국가는 그 상황을 뒤늦게 인식했다. 결국 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상황과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스타벅스” 자체를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거대 보수 정당이 주장하는 “집단 린치”라는 단어는 극우 세력과 혐오주의자들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 주었다. 스타벅스는 닉네임을 통한 정치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범람하는 공간으로 변모했고, 그 과정에서 극우 세력은 “애국돈쭐”이라는 표현까지 만들어 냈다. 아울러 이러한 닉네임에 대한 제재 의지는 기업의 사과 과정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 회장의 과거 발언들은 극우 세력의 배후에 기업과 정치가 공존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했다. 정용진 회장의 과거 “멸공” 논란과 정치인들의 두둔성 발언은 그들에게 더욱 큰 활력을 제공한 셈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만을 강조할 뿐, 조명되지 않은 피해와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레이(Grey)는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마음의 함정』(Grey, 2026)에서 피해자가 없어 보이는 것은 우리가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 실제로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5·18 민주화운동을 기반으로 형성된 한국 사회의 민주화 정신은 결국 대한민국 다수 시민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기준이 된다.

우리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진영 논리에 따라 과거를 배척하지 않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2‧28 대구 민주운동, 3‧8 대전 민주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간다.

(국민의힘 당헌 中, 2020년 9월 2일 전면 개정본)

 
    국민의힘 또한 5·18 민주화운동 정신이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만들었으며, 이를 계승한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이 계승한다고 말하는 도덕적 기준에 대한 비판과 문제 제기를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형성한 계엄과 혐오의 문제를 도덕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행위를, 자신들의 정당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극우와 거짓 뉴스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위협 인식을 자신들의 도덕적 정당성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더 많은 거짓 뉴스와 혐오를 생산한다. 결국 이들은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주체를 오히려 5·18 정신을 비판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 정신을 계승하는 세력이라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현상이 국가 차원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공통된 문제의식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이다.
 
   스타벅스 사태를 통해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핵심 논점은 국가적 탄압 아래 형성된 피해자들의 기억과 국가 정신에 대한 혐오·차별 현상을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즉 아직도 시위를 “대모”라고 부르는 현실 속에서, 그들이 말하는 “대모”를 스스로 반복하면서까지 지키려는 대한민국의 위기가 무엇인지를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위기의 근원이 오히려 극우의 목소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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