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세간의 관심은 ‘충주맨’이라고 불리던 김선태 주무관의 퇴사 소식이었다. 공직 사회에서 ‘충주맨’이라는 인플루언서가 탄생하고, 해당 방식의 홍보가 일반화될 때 나온 그의 퇴사 소식은 세간의 논란을 키웠다. 그의 퇴사 처리가 완료되고, 그는 ‘김선태’라는 일반인의 이름으로 다시 인플루언서(유튜버)로 업을 시작했지만, 이 시작은 결코 그가 공직 사회에 몸을 담고 있었다는 논란을 배제할 수 없었다.

‘충주맨’이라는 홍보 마케팅 수단은 그가 세간의 이목을 끌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종종 민원으로 “공무원이 유튜브나 하면서 논다.”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으며, “세금으로 이상한 짓 한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케팅 방식은 2030 연령층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사회에 충주라는 도시가 있음을 각인시켰다. 행사장의 대형 전광판을 게임용 화면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하수처리장에서 하이라이스를 먹는 과정을 보여 주며 소위 ‘라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사실 그가 밟아온 행적을 보면, 그가 충주라는 도시 이미지를 세웠다기보다 행정 이면에 가려진 공무원들의 업무를 은연중에 재현하고 있었다. 충주맨이 끝없이 주장한 “시장이 하라고 해서 했다.”라는 멘트는 지자체장의 결단이 행정의 최우선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고, 공무원도 그저 한 기업의 직원임을 인식시켰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을 내세운다는 인플루언서라는 직업과 공공의 업무를 담당한다는 공무원 직업이 교차되면서, 그는 많은 사람의 비판과 시기·질투마저 수용해야만 했다. 특히 과연 ‘공무원이 공무로서 얻은 유명세를 사적으로 유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비판은 결국 ‘세금으로 만든 유명세’라는 소비자주의적 논쟁을 이끌어 낸다.

최근 많은 대중이 소비자주의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교육이라는 시스템을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내가 낸 세금”이라는 단어로 정당화하고 있으며, 그들은 공무원의 행정이 결국 돈을 낸 소비자의 필요에 따라 움직여야 함을 주장한다. 사람들은 이를 전적으로 대의에 맞지 않는 행정이라고 언급하지만,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과 함께 소비자주의는 정당화된다. ‘충주맨’의 유명세에 대한 논란 또한 그렇다. 과연 지자체 홍보를 위해 내세웠던 개인의 얼굴과 노력은 세금으로 구매 가능한가라는 논점 아래, 몇몇 시민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러나 얼굴을 내세우는 것 역시 행정의 지시였음을 무시한 상태로 개인의 특성까지 세금으로 구매 가능한 것으로 환원하는 것 역시 잘못되었다. 김선태 개인의 퇴사 역시 이 궤와 함께 묶여 있다. 오히려 충주가 김선태의 이미지로 잠식되고 있는 지금, 과연 충주가 더 알려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고 세금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기에 “하면 안 돼.”라는 제한만 두고 있다.
물론, 외적인 행동으로 보면 충주맨은 공공소비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에서 "암적인 존재"라고 비판받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행정의 과부화와 급격한 승진, 그리고 주목받는 대우라고 할 수 있다. 충주맨이라는 캐릭터는 공무원을 대외적으로 앞세웠고, 이는 다른 행정기관의 홍보전략으로도 활성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공무원들은 자신의 할일에 더해 자신의 얼굴마저 내세우는 등의 활동을 해야했다. 다만 얼굴을 통해 공공기관을 내세운다고 해도, 충주맨과 같은 직급 상승을 기대할 수 없었다. '혁신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공무원의 골칫거리인 순환근무 역시 배제되었다는 점이 큰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공무원의 생활에서 순환근무는 필수지만, 김선태 주무관의 경우 홍보의 목적으로 순환근무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안티시청자의 경우, 해당 순환근무의 배제가 특혜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선태의 경우, 그 모든 것들을 인정하면서도 '성과'에 대한 인정은 해주지 않았다. 단지 눈에 띄었기 때문이라는 시기질투가 앞서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필자는 결국 충주맨은 시대의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결국 그의 행보는 오늘날 ‘유튜버’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것이라 본다. 먼저 충주맨(김선태)은 사실 지방 홍보의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동시에 충주맨은 한 개인을 공적으로 유용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장미란 선수를 임용한 것처럼, 충주맨 또한 뉴미디어 산업의 인재로서 공무원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금과 급여라는 투자를 받고 그는 일종의 지방 정부와 계약을 맺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오히려 충주시라는 곳은 해당 콘텐츠에서 수익 창출을 했을 때 어느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가를 계산했다면, 이는 한 개인이 받는 월급보다 더 뛰어났을 수 있다고 사료된다.
두 번째로는 오늘날 기업화되고 있는 유튜버 생태계를 주목할 수 있다. 많은 인플루언서가 개인 사업체를 차리면서 유튜버의 기업화를 꿈꾸고 있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유튜버라는 1인 출연자가 존재하지만, 이면에는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 생산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1인 출연자의 부재는 곧 유튜버 기업의 존재 가치가 영(0)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많은 뉴미디어 기업은 다양한 출연자가 해당 콘텐츠에 나와 직접적 생산자로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그렇다면 해당 출연자가 퇴사하는 행위를 기업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에 대한 질문은 그대로 다시 되풀이된다. ‘출연자는 오직 기업의 콘텐츠로만 여겨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지속적인 화두가 된다.

결과적으로 이 질문들에 대해서 하나의 과거 사례를 우리는 주목할 수 있다. 바로 아나운서의 프리랜서 선언이다. 과거 아나운서의 프리선언은 해당 방송국 프로그램 출연 3년 제한이라는 규정 아래 이루어졌다. 그들은 자신의 모방송국에서 배제된 상태로 자신의 직업적 성장을 이루어야 했고, 그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다. 아마도 유튜브라는 산업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한 산업에서 퇴사한 순간 그들은 그 장내에서 다시 또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김선태 또한 과거 자신의 직장에서 인적 자원을 획득했을지 몰라도, 그 장을 나오는 순간 개인으로서 인적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는 다른 문제가 된다. 자신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퇴사와 그 업의 연장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가 자신의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았을지 몰라도, 그 인지도 형성의 결과에는 개인의 노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나운서의 프리선언처럼, 만일 김선태의 행위를 제재해야 한다면, 충주시청이라는 공직 사회에서의 활동을 배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그의 개인적 성장 또한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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