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서울에 살지는 않았지만, 친척집을 가기 위해 자주 왔다. 근데, 그때마다 남산타워를 가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수학여행을 서울로 왔고, 그때에 처음으로 남산타워에 올라갔었다. 그 이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남산에 돈가스가 유명했음을 알았다. 나의 남산타워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돈가스로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돈가스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자 남산타워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기도 했다. 물론, 한 번도 남산돈가스를 먹어본 적은 없었다. 내 추억의 돈가스는 '배 터지는 생돈가스'브랜드만이 기억 속에 오로지 남아있다. 나의 학창 시절 부모님이 만들어주시는 돈가스에서 벗어나 먹을 수 있었던 돈가스의 기억 한 부분을 장식했다. 그래서 나는 돈가스 중에서도 경양식 돈가스를 좋아한다. 그래서 시골에 돈가스를 먹으러 가본 적도 있었다. 내가 돈가스를 먹어보면 먹어볼수록 남산돈가스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져갔다. 왜 저건 그렇게 유명할까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맴돈 것이다.

7월의 마지막 주, 나는 시원한 곳을 찾음과 동시에 공부를 하기 위해 '남산도서관'에 갔다. 사실 집에서 남산도서관까지는 한 40분은 가야 하는 거리이지만, 나는 남산도서관을 좋아한다. 일단 경치가 좋다. 그리고 숲 속에 있어서 조용해서 좋다. 주변에 나무가 많고 그 속에 묻혀있는 느낌이 드는 남산도서관은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공부하기가 꽤나 좋은 도서관이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전공으로 삼고, 좋아하기도 하는 문화사회학 관련 도서들을 많이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교외의 도서관을 가는 날에는 남산도서관을 항상 생각하기도 한다. 바로 앞이 후암동이지만, 이곳저곳으로 옮기기도 좋다. 아무튼 나는 7월 27일, 그날도 남산도서관으로 발을 옮겼다. 체감온도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였지만, 버스를 타고 내리쬐는 햇빛을 뚫고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신촌과 서대문, 서울역을 지나 들어가는 남산도서관은 다양한 사람들을 지나치게 해 주지만, 나는 도서관으로 향한다는 뿌듯함과 쫓는 더위에 잘 시선이 가지 않았다. 다만 서서히 커져가는 남산타워는 내가 도서관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아무튼 나는 12시에 도서관에 들어와 간단히 음료를 산 뒤, 공부에 집중했다. 도서관은 마치 카지노 같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한 7시 반까지 공부를 계속했다. 7시 30분이라는 시간은 매우 탁월한 시간이었다. 땡볕이 약간 줄어든 시간, 조금 선선해지는 시간이 딱 7시 30분쯤이 되는 것 같았다. 어느덧 윗 사진과 같이 파랗게 변했던 하늘은 붉게 변해들었고, 파란색과 빨간색의 그 사이인 보라색까지 만들면서 노을의 그러데이션을 그리고 있었다. 다만, 오늘 공부의 마침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를 하면서 마침 남산에 온 김에 '남산돈가스'를 먹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었던 '원조' 남산돈가스를 오늘 먹어보고자 한 것이다. 나는 도서관을 나와 조금 걸었다. 한 10분 정도 걸었을까? 저 멀리 주황색의 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남산돈가스의 원조 논란 문제. 원래 101번지 남산돈가스가 있던 자리에 저 음식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101번지 남산돈가스에서 옮긴 자리가 바로 소위 돈가스 거리와 조금 동떨어진 저곳이다. 남산의 내리막길에 자리를 잡은 해당 음식점은 조금 더 내려가면 과거 힐튼호텔의 건물이 나를 맞이한다. 그만큼 노다지인 자리였다는 것이다. 점차 남산돈가스라는 가게에 근접할수록 그 기대감은 극대화되었다. 저 많은 자동차와 함께 있는 소박한 가게. 그런 가게가 맞이해 주는 일종의 돈가스집은 의외로 소박하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그리고 그 아우라는 마치 애니메이션에 들어갔다고 해도 믿을 만큼의 아우라를 창출한다. 드라마의 한 장면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나의 환상에 미친 영향일 수 있다. 다만, 서울 한복판 일종의 동산 위에 있는 돈가스집은 그 아우라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가게에 들어가면, 다양한 음식을 판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심지어 남산돈가스집에서 꽁치조림과 순두부찌개를 판다는 사실은 이곳에서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사실과 함께 과연 돈가스가 메인 음식일까에 대한 의문점을 보일 수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상상하던 남산돈가스는 무빙에 나왔던 경양식 돈가스를 이미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생각과 달리 너무나도 한식적인 분위기와 당당히 '꽁치조림하나요'하고 외쳐도 이상하지 않은 식당의 풍경이 너무나도 새로웠다. 특히, 테이블에 놓여있는 반찬 통은 들춰보면 생고추와 함께 깍두기가 들어있다. 경양식돈가스집에 이러한 반찬이 무슨 일인가 할 정도로 너무 토종 한국적인 곳은 나의 모든 이미지를 깨버린 다른 환상을 만들게 되었다. 이 환상의 어긋남은 나에게 과연 이 식당을 잘 들어온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다만, 과연 원조 돈가스집이라고 하면 어떠한 이미지의 돈가스가 나올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 순간, 식당의 종업원이 나에게 두 개의 그릇과 포크, 칼을 건네왔다. 하나는 절반 정도 차있는 그릇이었으며, 하나는 빈 접시였다. 맞다, 빈접시는 무엇을 덜어먹으라는 신호였다. 그리고 그 무엇은 바로 내가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신기해했던 고추와 깍두기를 위한 접시 같았다. 다만, 그 음식들은 내가 안 먹는 것들이기에 신경을 딱히 쓰지 않았다. 다만 옆에 나온 수프는 옥수수수프로 나의 추억을 상기시키기 적절했다. 사실 수프는 일종의 세대를 거르는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나보다 윗 세대는 밀가루 수프를 기억하는 세대이니 그 추억은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다. 물론 밀가루 수프가 맛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만에 먹는 옥수수수프는 나의 입맛에 잘 맞았다. 나는 옥수수수프에 후추를 뿌리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얼른 한 그릇을 비운 뒤에 다음 음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메인 음식이 나왔다.

비주얼은 상상하던 돈가스가 나왔다. 바삭해 보이는 돈가스와 옥수수, 그리고 샐러드가 나왔다. 마치 첫인상은 내가 학식당에 온 것인가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묵직해 보이는 돈가스의 소스가 눈길을 끌었다. 나는 얼른 칼과 포크를 잡았다. 그리고 포크가 튀겨진 돈가스를 뚫는 순간, 나는 조금 놀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돈가스의 두께에 있었다. 마치 5mm가 될까 하는 돈가스를 어떻게 이렇게 튀겨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요즘의 두꺼운 돈가스만 먹어서 그런지 그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돈가스의 튀김옷과 고기의 두께는 엇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잘 몰랐다. 여기서 관건은 이제 돈가스가 아니었다. 돈가스의 소스가 모든 맛을 덮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옛날돈가스를 그래도 많이 먹어보았고 좋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돈가스의 생명 중 하나는 돈가스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입에 가까워지는 순간, 돈가스의 소스는 내 코를 찌르지 못했다. 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입에 들어오면, 조금은 더 어우러질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처음에 내가 돈가스를 맞이하면서 느낀 감정과는 다른 기대였다.

입에 들어온 돈가스는 마치 돈가스라는 존재가 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래, 너무 얇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돈가스라고 생각이 들지도 못했다. 돈가스 소스는 마치 시중의 돈가스 소스를 사용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향과 맛이 약했다. 당연하게도 실제 파는 오모사의 돈가스 소스보다 강한 식초향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스의 향이 강하지도 못했으며, 돈가스의 묵직함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마도 내가 너무 기대를 했던 것일까? 돈가스를 한입 크게 물어야 그 느낌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양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고기의 양이 어느 정도 사용되었는지 알고 싶은 느낌은 들었다. 단지 원조에 대한 실망감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남산 돈가스의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최근 옛날 돈가스의 형태들이 많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1만 3천 원이라는 가격의 값어치를 한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느낌이었다. 남산돈가스라는 단어가 선사하는 거대 담론에 의한 이미지는 이렇게 왜소한 모습을 보는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마주한 남산돈가스는 기대하면서 들어간 친근한 할머니집에서 마주한 힘없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최근의 물가를 생각하면 감안해야 할 수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가격이라면 다른 경양식 돈가스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